박희준 이사장
필자가 사업설명회, 학회 홍보 등을 끝낸 다음 날 투자예정자들은 각자의 지역으로 내려가기 위해 고속터미널에 모였는데 필자의 열정과 이력을 알고 난 뒤 ‘3유(有) CEO’로 불렀다고 한다. 제약회사 재직시절 ‘부지런함’과 ‘신용’이 최고였고 무슨 일이든 ‘하려고 하면 하는 사람’ 이라는 데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에다가 당시 국내 1위 소화제 베아제의 PM 경력을 알고서 제품의 품질까지도 인정하게 되었다. 이후 이들 10명으로부터 300만 원에서 2천만 원까지 모두 5천800만 원의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이리하여 우여곡절 끝에 일단 10평의 사무실을 얻고 집사람과 창업에는 성공한 것이었다.
회사의 명칭은 (주)씨에이팜으로 정하였는데 임상(Clinic), 대체(Alternative), 의약품(Pharmaceuticals)의 앞 글자를 따서 만들었다. 이는 한방과 양방의 처방에 융합기술을 접목해서 의약품, 화장품과 건강식품의 개발을 추진한다는 기업가 정신을 구현한 것이다.
그 후 인터넷 홈페이지를 구축하면서 병원과 약국 그리고 유아용품 판매점에 제품을 비치했다. 더 나아가 홍보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육아 잡지사에 6개월 뒤 돈을 벌어서 갚아 나가겠다며 대표를 설득했고 희한하게도 이례적으로 외상으로 광고까지 시작하게 됐다.
책 표지
맨주먹으로 창업을 했으니 준비할 일이 좀 많았겠는가, 우선 홈페이지부터 만들어 임산부들에게 알려야 했으니 밤늦게까지 컴퓨터 앞에 매달려 임산부의 의견에 댓글을 다느라 밤을 지새우기가 일쑤였다. 참으로 힘이 들었으나 점차 주문이 늘어나는 재미에 빠져 피로를 느낄 틈이 없었다. 영업은 필자가 맡았으나 상품배송이나 운반 기타 업무는 몽땅 집사람 몫이었으니 말이 좋아 부사장이지 잡역부도 그런 잡역부가 따로 없었다.
사무실은 조그만 빌딩의 4층에 위치했는데 엘리베이터가 없어 공장에서 올라오는 그 무거운 상품박스를 4층까지 여린 몸으로 올리고 포장해서 다시 내려보내야 했으니 그 힘이 오죽 들었을까, 하여튼 그 여파로 집사람은 허리통증을 달고 살았고 지금도 척추협착증으로 고생하고 있다. 이것을 생각하면 늘 죄를 지은 듯 미안하다.
연재 제11편으로 이어집니다.
* 이 글은 저자와의 협의하에 연재하는 것으로 저작권은 작가에게 있습니다. 무단 전재 및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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