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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2.05.19 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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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총재사진1111.jpg

나막사 김현풍 총재

 

[글로벌문화신문] 1919년 3월 1일, 의암 손병희 선생을 선두로 한 민족 대표인 33인은 독립선언서를 만들었습니다. 우이동의 천도교 봉황각에서였습니다. 의암 선생께서는 이곳에서 400명이 넘는 식구들에게 인쇄술을 비롯한 모든 것을 교육했고, 이곳이 3·1 독립운동의 발상지가 되었습니다.
 
 봉황각에 가보면 아시겠지만 삼각산에서 가장 잘 보이고 아래에서 올려다 보는 경관이 가장 좋은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삼각산이 가진 센 기운 때문에 의암 선생이 그곳에 터를 잡은 것이고 그 정기를 받아 3·1운동이 시작된 것이 아니겠습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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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삼가산 백운봉에 가시면 암각이 있습니다. 학생 대표로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정재용 선생이 쓰신 3·1운동 암각문이 그곳에 새겨 있습니다. 이 3·1운동의 비폭력 저항정신은 중국의 5·4혁명을 일어나게 했고, 인도의 간디가 이끄는 비폭력 불복종 저항운동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집트와 중동 지역의 혁명 그리고 미주에도 많은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그들이 배운 것이 바로 의암 손병희 선생의 3·1정신이었습니다.
 
요즘 말하는 한류의 시작이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삼각산 봉황각에서 시작된 3·1 운동 정신이 전 세계로 퍼져나간 격이니까요. 한류의 시작이 바로 1919년 3월이었습니다. 당시 손병희 선생은 100년 뒤에 새로운 시대가 온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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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이 3·1운동 100주년, 우리는 그분이 말했던 100년 뒤를 살고 있습니다. 프랑스 혁명 100주년에는 에펠탑, 미국 독립 100주년에는 예수상을 세웠습니다. 그렇다면 3·1운동 100주년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우리 나막사에서는 앞으로 100년 뒤를 내다볼 수 있는 사람들이 모여야 합니다.
 
의암 선생님 같은 분이 한 사람이라도 있어야 100년 전의 의암 선생을 기리고, 사라져 가는 민족의 혼을 되찾을 수 있는 기회가 옵니다. 다행스럽게도 ‘미래연대’를 만들어 100년 뒤를 예측하는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모두가 있는 힘을 다하고 있습니다.
 
2019년 3월 1일은 이미 지났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가 다함께 그분들의 뜻을 이어받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지금 모든 행사에서는 의암 손병희 선생이 33인의 한 분으로 속해 있을 뿐 지도자로 인식되어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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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의 정기가 흐르는 삼각산에서, 그 힘으로 대혁명을 일으킨 지도자 의암 선생, 우리는 그분이 그렸던, 그리고 그분이 지키고 싶어 했던 정신을 잊으면 안됩니다.
 
독립운동가의 후손은 가난하게 살고 친일파의 후손은 떵떵거리고 사는 게 우리 세상입니다. 정신문화는 점차 사라지고 역사는 왜곡되어 있습니다. 나막사는 앞으로 뿌리째 흔들리는  이 나라를, 함께 끌어갈 수 있는 정신문화를 만들어갈 생각입니다.

연재 제3편으로 이어집니다. 
  * 이 글은 저자와의 합의하에 연재하는 것으로 저작권은 작가에게 있습니다. 무단 전재 및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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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제2편, 김현풍 총재의 나라사랑 막걸리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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