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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2.05.18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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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준사진11123.jpg

박희준 이사장

 

[글로벌문화신문] 제약회사 입사 7년 만에 당초 입사 시 자신과의 약속대로 사표를 던졌다. 젊은 혈기에 더 큰 시장에 도전하고 싶었다. 1988년 당시 노태우정부는 대통령 공약대로 주택 200만 호 건설 정책을 밀어붙였는데, 이 건설붐에 편승해 1989년 경남 양산에서 건축자재 제조업에 손을 댔다.

 

부동산 활황기에 좀 더 큰 시장을 겨냥했고 무엇보다도 평소 존경하던 현대그룹 정주영회장의 건축업 성공스토리를 본 게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건축·건설자재 품귀현상이 빚어질 때였다. 시멘트의 경우는 품질은 묻지도 않고 중국에서 마구잡이로 들여올 정도였다. 집을 지으려니 많은 콘크리트가 필요했고 그래서 산을 깎아 자갈을 채취하여 판매하는 사업을 했다.

 

성공시크릿 표지1111.jpg

 

 

그 당시 동일 업종에 손을 댄 사람치고 돈을 못 번 사람은 없을 정도였다. 사업은 승승장구했고 창업한 지 3년 만에 큰 성공을 하여 연간 매출액도 60억에 달했다. 그러나 건설경기가 하락하자 어음은 늘어나고 더욱이 어음기간도 늘어 운영자금을 구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져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하여 중국합작을 시도하게 되었다.


그러나 중국과의 합작을 위해 두 차례 방문하여 합작의향서를 교환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귀국하는 날 태풍의 폭우로 인한 산사태로 현장공장이 매몰된 게 아닌가. 산을 깎아 공장을 지었는데 호우로 인해 절단면이 무너지며 사일로, 중장비창고, 컨베이너 벨트 시설 등을 덮쳐버린 것이었다.

 

하늘이 무심하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에서의 사업을 못 하게 미리 막아준 것이라 생각을 하고 아쉬움을 달래면서 하늘에 감사하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중국 사업은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현실적으로 간신히 이끌어가던 사업도 자재대금에 대한 현금결제가 3개월 어음에서 6개월, 10개월 심지어는 1년으로 늦춰졌다. 1992년 초 급기야 받아 쥐고 있던 어음 53억 원이 부도가 났다. 참담했다.

 

 

9. 20151011 유모차는 가고싶다123.jpg

 

 

시작 3년 만에 살던 주택과 현장 생산시설까지 소위 빚잔치로 전부를 넘기면서 부채를 정리했다. 남은 500만 원으로 소형주택의 방 한 칸을 얻어 보증금을 걸고 월세를 주기로 하고 이사를 하게 되었다.

 

부채정리를 하고 손에 남은 것은 단돈 500만 원 정도였으니 문자 그대로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된 것이다. 억장이 무너졌지만 가족들을 이끌고 전세방을 얻었다. 집은 좁고 겨울에는 추위에 몸을 떨어야 했다. 바깥 날씨가 영하로 떨어질 때는 아이들을 중간에 두고 양쪽에 집사람과 내가 누워 서로의 체온으로 냉기를 이겨 내어야만 했다.

 

부도소식을 전해 들은 건설회사 여기저기에서 임원으로 합류해 달라는 부탁도 있었지만 이미 무너진 건설경기는 쉽게 돌아올 것 같지 않았다.

 

더 이상의 미련과 후회는 가지지 말자고 굳게 다짐하며 필자는 “송충이가 갈잎을 먹으니 처음에는 너무 맛있었지만 결국 배탈이 났다.”고 뉘우치며 송충이는 역시 솔잎을 먹어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연재 제8편으로 이어집니다. 
  * 이 글은 저자와의 합의하에 연재하는 것으로 저작권은 작가에게 있습니다. 무단 전재 및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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